아름다운 말은 믿을 것이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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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안개에 휩싸인 왕조산

어떤 아침 38, 안개의 나날들, 이진우 시인

어떤 아침 38, 안개의 나날들, 이진우 시인   장마철에는 자주 비 혹은 안개로 아침이 열려요. 어제 오후부터 내린 비가 그친 이 아침은 안개 나라. 안개가 바다는 보여주지 않고 산꼭대기만 살짝 보여주네요. 안개 자욱한 날 태어났다 죽은 하루살이 시인은 지상의 시간은 안갯빛이라고 썼겠지요. 안개가 보여주는 풍경과 가린 풍경이 몽환적인 대비를 이룬 날이에요. 안개는 별들의 고향인 성간구름처럼 그 안에 품은 따스함과 물방울로 생명을 만들고 있겠죠. 안개가 신비롭게 보이는 까닭이 여기 있지 않나 해요. 잘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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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월을 용서할 수 있을까 | 이진우 시인

이 세월을 용서할 수 있을까 | 이진우 시인   나를 속이고 나를 가두고 간 사람들 때문에 이 봄 내내 마음이 새까맣게 얼어 붙었는데 며칠 바람 철 없이 불더니 멀리 떠났던 장맛비 찾아와 다시 며칠, 양철 지붕을 부술 듯 두드린다 겨우 몸을 일으켜 창문 너머를 보니 세상은 바다 속 고개를 드니 하늘에는 잿빛 파도 거칠다 홀로 있는 방이 사납게 흔들려 두렵고 외롭다 외로워서 죽을 만큼 두렵다 창문을 열면 물이 밀려 들어 이 어두운 방을 채울까 천장까지 언 몸을 밀어 올렸다가 창밖으로 꺼집어내고 등을 밀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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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침 37, 소시오패스가 판칠 때, 이진우 시인

어떤 아침 37, 소시오패스가 판칠 때, 이진우 시인   우리 마을에서 가장 먼저 깨는 사람들은 멸치 어장에 나가는 어부들이에요. 그들은 새벽 3시쯤 집을 나서는데, 마을을 가로질러 가는 동안 마을 개들도 깨어나 짖어대죠. 여섯시쯤에는 닭이 울고, 일곱시쯤에는 까마귀가 마당에 있는 배나무로 날아들어요. 개소리나 닭소리는 꿈결에 들어줄만한테 바로 창가에서 어린 배를 두고 싸워대는 까마귀 소리는 정말 크고 신경질적이고 시끄러워서 견딜 수 없어요. 까마귀가 다녀가면 쪼다만 배가 후두둑 떨어져요. 쓰레기봉투를 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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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근포 마을 사진

어떤 아침 36, Who is it that can tell me who I am?, 이진우 시인

어떤 아침 36, Who is it that can tell me who I am? 이진우 시인   지난 밤 꿈자리가 색달랐어요. 믿을 수 없이 멋진 일도 있었고, 짜릿한 순간도 몇 번이나 있었죠. 그런데 끝이 안 좋았어요. 갑자기 몇 억원을 갚으라고 협박하는 이가 나타났어요. 말도 안 되는 협박이라고 따지다 꿈에서 깼어요. 깨자마자 꿈인 걸 알고 한숨을 쉬었는데, 이 한숨을 따라 멋진 일, 짜릿한 순간도 날아가버렸죠. 하나를 얻고 하나를 잃었으니 억울할 게 없는 꿈이다, 싶다가 잠에서 깬 내가, 어젯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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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파한의 아침 | 이진우 시인

이스파한의 아침 | 이진우 시인   헐렁한 옷을 입고 이스파한 뒷골목 볕 잘 드는 카페로 가서 장미향 물담배를 피웠지 옆자리엔 아라비아에서 왔다는 베두인이 앉았고 모스크에서 예배를 마친 무슬림들이 골목을 천천히 흘러나갔어 탁자에는 잘 익은 석류가 있었는데 인사를 잘하는 호비호비가 태연하게 쪼고 있더군 얇고 긴 작대기를 든 경찰이 와서 시비조로 여권을 보여달라기에 아무 말 하지 않았어 슬그머니 사라진 베두인 자리에 눈이 큰 아이가 와서 앉더니만 다짜고짜 일 달러를 달라기에 아무 말 하지 않았어 금발머리 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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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 비 맞는 참나리꽃

어떤 아침 35, 여행의 씨앗, 이진우 시인

어떤 아침 35, 여행의 씨앗, 이진우 시인 어제 밤새 퍼붓던 비가 그치고 있어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날씨가 일상이 되었어요. 장마의 속내를 알 수 없으니 장마의 장단에 맞추고 지내요. 비 오면 오는대로 볕이 쨍쨍하면 한대로 마음을 놓아버려요. 장마를 지나며 풀들이 신났어요. 농부가 게으름 부리는 틈을 놓치지 않고 키를 키우고 몸집을 불렸어요. 온통 잡초투성인 텃밭에 쪼그리고 앉아서 잡초를 뽑아보면 알게 되요. 이렇게 힘찬 잡초의 때가 서로 경쟁하느라 뿌리가 부실한 때라는 걸. 흙이 젖어 있어 뽑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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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침 34, 이스파한의 아침, 이진우 시인

어떤 아침 34, 이스파한의 아침, 이진우 시인 오늘 아침은 너무 많은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렸어요. 어제 밤늦도록 영어를 잘 하는 대만사람과 중국어를 잘하는 그의 한국인 여자친구와 사진작가와 간호사와 더불어 떠들었는데, 떠들다보면 생각이 사라질지 알았는데, 오히려 생각은 직박구리 울음소리처럼 날카로와졌어요. 짧은 글도 쓸 수가 없어서 시간만 보내다가 문득 얼마 전에 쓴 시를 떠올렸어요. 한번도 가 본 적이 없는 이란의 아름다운 도시 이스파한을 여행하는 시인데, 내일은 이런 아침을 맞을 수 있게 되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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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침 33, 텃밭의 생활사, 이진우 시인

어떤 아침 33, 텃밭의 생활사, 이진우 시인   오늘 아침에도 까마귀가 배를 두고 싸우는 바람에 눈을 떴어요. 한참 지나니 한 놈만 남고 다 날아갔어요. 싸움에서 이겨 독차지하게 된 건지 져서 마지막 차례가 된 건지 몰라요. 까마귀의 요란한 아침식사 시간이 탈 없이 끝나 다행이에요. 배나무 아래 텃밭 여기저기에 지렁이가 사는데, 지렁이는 배를 떨어뜨려주는 까마귀가 반기겠어요. 지렁이가 배를 맛있게 먹으면 개구리가 지렁이를 먹으러 툭 튀어나올 거에요. 개구리도 여러 마리 살거든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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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너구리 지나간 다음날

어떤 아침 32, 태풍 너구리가 지나간 후, 이진우 시인

어떤 아침 32, 태풍 너구리가 지나간 후, 이진우 시인   태풍 너구리는 어제 초저녁 무렵, 거제도 남쪽마을에 한 차례 소나기를 뿌렸어요. 그리고는 잠잠했죠. 태풍이 북상하면서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소식에 바닷가 사람들 근심도 커졌어요. 모이면 태풍 이야기, 태풍으로 피해 본 이야기를 하면서 긴장했죠. 이러는 사이에 잠깐 서울에 갔다왔는데, 서울에서 태풍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어요. 대도시에선 태풍이 몰아쳐 피해를 입더라도 개인의 불운 정도로 생각하나봐요. 모두의 불행으로 받아들이는 바닷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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