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말은 믿을 것이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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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침 31, 우주선을 타고, 이진우 시인

어떤 아침 31, 우주선을 타고, 이진우 시인   어젯밤 친구들과 늦게 헤어져 막차를 겨우 타고 서울을 떠났어요. 밤 12시 30분. 피곤해서 골아 떨어졌다가 문득 깨어 둘러보니 남쪽 바다쪽으로 가는 고속도로는 잠잠하면서 깜깜했고 멀리 있는 작은 마을의 가로등은 별처럼 희미했어요. 고속버스 안도 어두웠고 승객은 모두 잠들어 있었죠. 우주선을 타면 이럴까라는 생각이 스쳤어요. 우주선을 타고 지구라는 행성을 여행하고 있다는 착각이 뒤를 이었죠. 이 행성에도 사랑을 아는 생명체가 있지 않을까? 사랑하고 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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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켓 사진

어떤 아침 30, 아침의 표정, 이진우 시인

어떤 아침 30, 아침의 표정, 이진우 시인   아침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아왔어요. 어제와 분명 다른 아침일 텐데 무척 낯익지요? 대개들 일상과 습관이 너무 단단해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침의 새로움을 보지 못해요. 밤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 낯선 곳에서 아침을 맞은 기억이 있잖아요. 아침에 일어나 처음으로 창밖을 볼 때 어떻던가요? 풍경을 바라보는 단 한 사람을 위해 펼쳐진 듯한 아침.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적응하면 새 아침도 살던 곳과 좀다른 아침으로 무뎌지죠. 다름보다 비슷함에, 살아오면서 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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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침 29, 위로, 이진우 시인

어떤 아침 29, 위로, 이진우 시인 는개 내리고 안개 깔린 아침이에요. 어제 바닷가를 걷다가 가까웠던 원로 시인 부고를 듣고 마음이 많이 흔들렸어요. 밤늦도록 살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죽는 일에 대해 생각했어요. 생각이 그치지 않아 짐을 꾸려요. 그 분이 남겨둔 사람과 세상을 보러 가기로 했어요. 버스 시간이 다가와서 오늘 편지 이만 줄여요. 겨울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봄이면 보란듯이 피어나는 들꽃의 생활사를 자꾸만 되새기는 아침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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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꽃 사진

어떤 아침 28, 꽃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이진우 시인

어떤 아침 28, 꽃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이진우 시인   밤새 비가 왔고, 지금도 내리고 있어요. 소나기가 아니라서 비를 맞으며 뜰을 거닐었어요. 빗속에 있으면 물고기가 된 듯 해요. 화학적으로 비를 분해하면 산소와 수소가 되죠. 이 둘이 잠깐 만난 것뿐인데 세상이 달라져요. 육지에 사는 생물은 기체 환경에 적응했고 물 속에 사는 생물은 액체 환경에 적응했어요. 이 환경을 이루는 원소는 별 차이가 없잖아요. 그런데 이 작은 차이가 진화의 방향을 결정했고 다름을 만들어냈어요. 문득 새로 핀 초롱꽃을 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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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당무 사진

어떤 아침 27, 홍당무, 이진우 시인

어떤 아침 27, 홍당무, 이진우 시인   홍당무, 좋아하나요? 당근이라고 붉고 길쭉한 원추형 채소 말이에요. 내 텃밭에 홍당무가 있어요. 조그만 새의 헝클어진 깃처럼 생긴 연두잎이 새 봄, 빈 밭에 삐죽 솟아나면 마음이 설레요. 홍당무 잎을 흔들면 달콤한 풀냄새가 나고 봄이 끝날 무렵부터 몇 천개나 되는 조그만 꽃들이 모여 잘 돌본 봉분같이 둥그렇게 모여 피어나요. 요즘도 홍당무꽃이 한창이에요. 한쪽에선 지면서 씨를 맺고 있어요. 나는 홍당무 뿌리를 먹으려고 기르지 않아요. 거름을 주거나 벌레를 잡아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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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리 꽃잎 사진

어떤 아침 26, 장맛비에 마음 여린 꽃 떨어져도, 이진우 시인

어떤 아침 26, 장맛비에 마음 여린 꽃 떨어져도 이진우 밤새 내린 비가 뜰을 적시고 온갖 꽃잎과 이파리에 빗방울을 매달아놨어요. 솔잎마다 꽂힌 다이아몬드 이슬같은 빗방울이 안쓰러워요. 밤새 시달린 꽃잎들은 풀이 죽어있고요. 뜰 안의 빗방울을 모두 따모으면 무게가 얼마나 나갈까요? 그 무게 아무리 많이 나가도 밤새 시달리며 사랑을 기다리던 꽃들의 한숨만 못하겠지요. 그래도 꽃들은 장맛비와 어둠을 뚫고 날아오는 벌, 나비를 기다렸겠죠. 꽃을 위한 기상대가 문 열었다는 소식을 들은 적 없으니 꽃과 같은 마음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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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 노을 사진

어떤 아침 25, 장마 사이 노을, 이진우 시인

어떤 아침 25, 장마 사이 노을, 이진우 중부지방에도 장마가 시작되었다는 뉴스가 있더니 퇴근길 인사동에서 장대비를 피해 건물 그늘에 서 있다가 평소에 잘 보이지 않던 꽃다발이 눈에 띄어 하나 샀다는 소식도 왔어요. 비와 함께 도시가 살아나는 마법이 시작된 거죠. 갑작스런 비에 발목을 잡혀 바쁜 걸음을 멈춘 사람들이 많았겠어요. 비슷한 자리에 있던 사람들끼리 눈이 맞기도 했겠고, 사랑의 불꽃이 튀기도 했겠죠. 풀 죽었던 화초들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나뭇잎들이 빗방울을 튕겨내며 까르르 웃는 소리 요란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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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해링 그림

어떤 아침 24, 하루하루, 이진우 시인

어떤 아침 24, 하루하루 이진우   하루하루 사는 일이 그때그때 달라서 다행이에요. 날마다 눈을 떠서 즐겁거나 눈을 뜨는 게 괴롭기만 하지 않아 다행이에요. 어제가 괴로웠다고 오늘 하루 역시 괴로울 거라고 미리 단정 짓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에요. 하루하루가 즐겁거나 괴롭거나 덤덤하거나 셋 중 하나가 아니라서 다행이에요. 즐겁다가 괴로워지고 괴롭다가 덤덤해지고 덤덤하다가 즐거워지는 감정의 흔들림은 순서와 상관없이 일어났다가 스러지고 또 일어나죠. 물론 또 스러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은 내 밖의 상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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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침 23, 나에게로의 여행, 이진우 시인

어떤 아침 23, 나에게로의 여행 이진우 며칠 집 떠나 먼 도시에서 나를 여행했어요. 20년 정도 살았던 도시인데 너무 많이 변해 낯설기만 했어요. 그래서 외국을 여행하는 기분으로 지냈어요. 외국인을 쉽게 볼 수 있었고 외국말로 말을 걸어오는 사람도 있어서 외국인가 도시를 다시 둘러보기도 했어요. 오래 집 안에서, 조그만 마을 근처로만 여행을 했어요. ‘하루하루가 여행이다’란 말을 품고 살아서 도시로의 여행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좀 다를 줄 알았는데 도시에서 가장 많이 만난 사람은 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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